좋은 시
달팽이의 꿈 / 김인숙
선한이웃moonsaem
2020. 12. 22. 02:34
세상에서 가장 느린 풍향계를 달고
나는 나를 운반한다
내일의 바람은 아직 내 것이 아니므로
후생後生에게 맡기고
꽁무니에 따라 붙는 오늘의 바람을
폐부 깊이 들이마시고
나는 나를 끌고 평생을 간다
온몸에 뒤집어쓴 이 알이 부화할 때까지
기꺼이 나락을 헤매다
나는 새가 될 거야
붉은 날개를 가진 새가 될 거야
종일 타오르는 불꽃,
불타는 노을이 될 거야
그러니 한낮의 뙤약볕을 나에게 퍼부어 주렴
내 부리와 더듬이가 말라비틀어지도록
내 심장이 타들어가도록
온몸이 날개가 될 수 있도록
세상에서 가장 느린 풍향계를 달고
나는 나를 운반한다
현생現生에 부는 바람만이
오직 내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