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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혜정 green time

달밤 / 윤오영 본문

좋은 수필

달밤 / 윤오영

선한이웃moonsaem 2020. 12. 6. 23:26

달밤 
 
 
내가 잠시 낙향해서 있었던 때 일.
어느 날 밤이었다.
달이 몹시 밝았다.
 
서울서 이사 온 윗마을 김 군을 찾아갔다.
대문은 깊이 잠겨 있고 주위는 고요했다.
나는 밖에서 혼자 머뭇거리다가
대문을 흔들지 않고 그대로 돌아섰다.
 
맞은편 집 사랑 뒷마루엔
웬 노인이 한 분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달을 보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그리로 옮겼다.
그는 내가 가까이 가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아니했다.
 
"좀 쉬어가겠습니다."하며 걸터앉았다.
그는 이웃 사람이 아닌 것을 알자,
"아랫마을서 오셨소?" 하고 물었다.
"네, 달이 하도 밝기에......"
"음! 참 밝소." 허연 수염을 쓰다듬었다.
 
두 사람은 각각 말이 없었다.
푸른 하늘은 먼 마을에 덮여 있고,
뜰은 달빛에 젖어 있었다.
 
노인이 방으로 들어가더니 안으로 통한 문소리가 나고
얼마 후에 다시 문소리가 들리더니,
노인은 방에서 상을 들고 나왔다.
소반에는 무청 김치 한 그릇, 막걸리 두 사발이 놓여 있었다.
 
"마침 잘 됐소. 농주 두 사발이 남았더니......" 하고 권하며,
스스로 한 사발을 쭉 들이켰다.
나는 그런 큰 사발의 술을 먹어 본 적은 일찍이 없었지만
그 노인이 마시는 바람에 따라 마셔 버렸다.
 
이윽고,
"살펴 가우." 하는 노인의 인사를 들으며 내려왔다.
얼마쯤 내려오다 돌아보니 노인은 그대로 앉아 있었다.

 

 

 


- 윤오영(尹五榮) -
  
* 윤오영(尹五榮 ; 1907-1976) 
수필가. 평론가. 국문학자. 호는 치옹(痴翁). 서울 출생.
양정고보 졸업. 1959년 [현대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데뷔하였다.
그는 한국적인 정신을 바탕으로, 수필은 곧 문장이라고 할 만큼
글을 다듬는 데 고심하여 작품을 썼다.
수필집에 [고독의 반추], [방망이 깎던 노인]이 있고,
저서에 [수필문학 입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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