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문혜정 green time

말뚝 / 마경덕 본문

좋은 시

말뚝 / 마경덕

선한이웃moonsaem 2020. 12. 23. 00:00

선착장 짠물에 얼룩진 쇠말뚝, 굵은 밧줄이 똬리를 틀고 말뚝의 목을 조이고 있다. 얼마나 많은 바다가 드나들었나. 끙차, 목에 밧줄을 휘감고 버틴 시간이 얼마인가. 투두둑 바다의 힘줄을 끊어먹은 말뚝 모가지가 수평선을 향해 늘어져있다.

 

  녹이 슨 밑동. 벌겋게 흘린 눈물자국이 지워지지 않는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든 밧줄, 단숨에 바다를 둘러매던 그을린 팔뚝, 노을에 젖은 만선의 깃발, 말뚝에 마음을 묶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가. 철썩, 포구가 몸을 뒤트는 순간 말뚝의 영혼이 새어나간다. 수많은 이별을 치르는 동안 말뚝의 심장은 차갑게 식었다. 

 

  선창가 말뚝에 걸터앉아 떠난 사람을 생각한다. 말뚝 뽑힌 자리, 깊이 파였다. 나를 맬 곳이 없다.

 

 

 

 

'좋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만약 / 에밀리 디킨슨  (0) 2021.02.20
매일 무너지려는 세상 / 김중일  (0) 2020.12.23
달팽이의 꿈 / 김인숙  (0) 2020.12.22
무서운 속도 / 장만호  (0) 2020.12.21
거리의 노트 / 마경덕  (0) 2020.12.18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