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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혜정 green time

거리의 노트 / 마경덕 본문

좋은 시

거리의 노트 / 마경덕

선한이웃moonsaem 2020. 12. 18. 20:40

오늘이 쏟아진다

거리에 전시된 감정은 대부분 무덤덤하다

흐림과 맑음이 겹친 감정은 무표정보다 난해하다

달리는 길은 어제의 기분을 계산해서 거리의 노트에 나열했다

첫줄에 기록된, 사망 5명 부상 78명

시작은 끝으로 마무리되고 정체된

깁스의 시간과 링거의 시간은 늘 같은 표정이다

오늘과 내일의 표정은 예측불허지만

답습한 통계로 날씨를 예감하듯, 불운은 그다지 변동이 없다

지난해부터 오늘로 이어진 구간은 커브가 심한 난코스

무차별 중앙선을 넘어 온 계절은 난폭해서

내일의 비탈길은 예고되었다 먼 곳에서,

유빙이 흘러오는 동안 폭설은 결빙으로 이어지고

수시로 현수막을 바꾸는 도시는 왜곡된 표정을 찍어냈다

브레이크가 파열된 지금은 나목裸木의 시간

대부분 표정은 직설적이다

쓸쓸하거나 냉담한 말투는 이 거리에서 자주 마주친다

24개로 이어진 하루라는 마디 어디쯤에서 저기압이 분리될까

어떤 바람이 흐린 내일을 견인해 갈까

신경질적인 하늘이 바람의 방향대로 눈빛을 수정한다

전광판은 태연하게 숫자를 들고 서서

길의 속도와 취기가 섞인 졸음을 합산하고

내일의 기분을 정리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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