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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혜정 green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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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nostalgic diary/끼적끼적....

흐린 날

선한이웃moonsaem 2020. 12. 18. 20:33

요사이 속으로 징징거리는 일상을 보냈습니다
나는 주어진 시간을 남보다 더 많이 조각내 살아야 합니다
오늘도 남은 한 토막의 시간을 어디에 쓸까 고민하다가 어슬렁어슬렁 시를 그리러 갑니다
‘흐린 날의 회상’이라는 건성건성 쓰여진 내 졸작 시를 보시고선 생님께서 햇볕 쨍한 날보다 흐린 날을 좋아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날은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을 잠시 멈추고 유유자적 낚시할 여유도 생기고
조용히 시를 쓸 시간도 생긴다고 말씀하십니다
어제 그분의 말씀을 눈치 빠른 날씨가 귀담아 들었나봅니다
‘날씨 맑음’ 일기 예보를 무시하고 스멀스멀 날씨가 흐려집니다
얇은 회색 미사포를 쓴 세상은 온통 낭만 무대입니다
치열한 세상 속 사방에서 우글거리는 소음들을 가라앉히고 싹싹한 바람이 자장가를 불러줍니다
하늘을 똑바로 쳐다보아도 따가운 눈부심이 없어 험한 인상을 쓰지 않으니 좋습니다
미간에 내 천자로 그려진 까칠한 내 주름은 이제 보니 너무 맑은 날씨만을 동경한 이유였습니다
꽉 찬 세상에 흐린 날씨는 하얀 여백을 만들어주고
나는 이곳에서 안온하고 반가운 생의 뒤안길을 만납니다
나는 비로소 안도의 숨을 쉴 수 있겠습니다
대단한 인생일수록 힘이 많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담수화처럼 밋밋한 인생이어서 그나마 행복하다고 오늘 흐린 날이 내게 일깨워 줍니다
물 댄 동산처럼 풍성하지 않아도 늘 마르지 않고 흐르는 시냇물 같은 생에 감사해야겠습니다
어린 빗방울이 톡톡 내 발등을 간지럽힙니다
저처럼 살아 보라며 킥킥거립니다
이런 날은 그냥 혼자 가만히 있기에도 좋은 날입니다
우린 때로 흐린 날의 무채색 세상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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