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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혜정 green time
감꽃 / 정희승 본문
어른들이 모두 들일을 나가고 없는 조용한 한낮, 앞마당 감나무 아래서 봉금이, 수인이, 안숙이가 땅따먹기 놀이를 하고 있다. 땅의 경계가 되는 커다란 원 주위에 둘러앉아 장뼘으로 반달 모양의 집을 그려 놓고, 순서를 정하려고 가위바위보를 한다. 아이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쪼그리고 앉아 그들이 노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다.
눈이 큰 봉금이가 선이다. 집과 땅의 경계선이 만나는 지점에 눈을 내고 그 위에 사금파리 말을 올려놓자, 시작을 알리듯 감꽃 하나가 원 안으로 톡 떨어진다. 하지만 감꽃을 치맛자락에 주워 모아서 물리도록 가지고 놀았던 터라 누구도 관심이 없다. 봉금이는 엄지손톱으로 말을 살짝 튀겨 주인 없는 빈 땅으로 내보낸다. 세 번 튀겨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말이 지나간 안쪽은 모두 집이 된다. 욕심을 부리지 않고 조금씩 집을 키워 나간다. 목에 걸린 감꽃목걸이가 고개를 처박고 움직일 때마다 흔들거린다.
안숙이는 손이 커서인지 손놀림이 설다. 힘 조절이 서툰 까닭에 말이 선에 닿거나 집 밖으로 벗어나기 일쑤다. 두 번째 시도를 하다 그만 선에 닿아 죽고 만다. 안숙이가 남겨놓은 넓은 땅에도 감꽃이 떨어진다.
잔부끄럼움이 많은 수인이는 땅따먹기만은 달인이다. 엄지와 중지를 직선으로 펼칠 수 있어 누구보다도 장뼘이 큰데다 손놀림도 섬세하다. 말이 나갔다 들어오기를 반복하면서 수인이의 집은 금세 넓어진다. 그곳에도 역시 감꽃이 진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 주의를 끌지 못한다.
놀이를 하다보면 목에 걸린 감꽃목걸이가 성가시게 마련이다. 봉금이는 뜻대로 되지 않자, 순전히 목걸이 탓이라는 듯, 그것을 벗어 아이에게 준다.
“이거 너 가져.”
“아니야, 괜찮아.”
아이가 손사래 치며 거절해도 다시 권한다.
“이거 맛있는 거다. 너 가져.”
쑥스러워하며 마지못해 받아들자 봉금이는 원 안으로 들어가 홀가분한 마음으로 놀이에 열중한다.
감꽃 목걸이는 쉽게 으깨어지므로 오래 들고 있기가 마땅찮다. 아이는 몇 번 손을 바꿔 쥐어보다가 귀찮은지 그것을 목에 건다.
또 감꽃이 진다. 이번에는 아이가 앉아 있는 원 밖이다. 톡톡 토토톡….
그러고 보니 성긴 우박처럼 경계 없이 떨어지고 있다.
떨어진 감꽃이 여기저기서 튀밥처럼 튀어 오르자 아이는 구경하다 말고 무심코 감나무를 올려다본다. 톡톡 멀뚱이 쳐다보는 아이의 얼굴에도 예제없이 감꽃이 떨어진다.
얼굴에 맞는 느낌이 참 좋다. 싱그러운 연두 물결이 미소를 머금은 아이의 얼굴에 어른거린다. 아이는 위를 올려다보다가 그만 기대가 교차하는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다시 눈을 지그시 내리감는다. 톡톡.(작품집 [꿈 꾸는 사물들])
출처: [산문 산책
작법 해설▹
① 이 작품을 읽은 독자의 감상은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양' 자체가 감꽃이라고 느낄 것이다. 독자들로 하여금 그렇게 느끼게끔 만든 것이 이 작품의 작법이 될 것이다.
② 이 작품은 ‘아이’라는 3인칭 시점(視點)법의 작품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③ 그러나 주인공인 ‘아이’는 아무 사건도 일으키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④ 이 작품 속에서 ‘아이’의 역할은 수필적 화자의 정서를 대변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⑤ 작품 구성은 ‘봉금이, 수인이, 안숙이’라는 세 아이가 땅따먹기를 하는 매 장면마다 ‘원 안으로 톡 떨어진다.’를 반복적으로 끼워 넣는 시 작법의 율격의 변형과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⑥ 이 세 아이의 ‘감꽃’ 그림 위에 결정적인 굵은 감꽃의 선을 긋은 역할이 ‘아이의 얼굴에도’ 떨어지는 감꽃이다.
⑦ 문학 이론에 이미지즘이라는 것도 있고, 시문학 이론에는 ‘무의미 시’라는 것도 있다. 이 작품은 창작문예수필 작품에도 이미지즘이나 무의미 창작수필 이론이 가능하지 않을까를 보여주고 있다.(문학평론가 이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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