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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혜정 green time

Tutti Frutti / 리틀 리처드 본문

음악/순수한 시간 속에...올드팝송

Tutti Frutti / 리틀 리처드

선한이웃moonsaem 2020. 5. 10. 22:53

 

리틀 리처드 별세

 

오늘 '로큰롤 '선구자' 중 하나로 꼽히는 미국 가수 리틀 리처드가 별세했다.  그의 죽음 앞에 밥 딜런, 믹 재거 등 전설적 뮤지션들의 추모가 줄지어 이어졌다.향년 87세의 리틀 리처드(본명 리처드 웨인 펜니먼)는 9일(현지시간) 골수암으로 테네시주 툴라호마에서 별세했다고 한다. 

 

오늘 별세한 리틀 리처드는 자신을 ‘로큰롤의 설계자’라 불러왔다고 한다. 리틀 리처드는1950년대 중반부터 숱한 히트곡을 남기며 전 세계 3000만장 넘는 음반 판매고를 올렸으며,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전설적인 로커 프레디 머큐리가 10대 시절 모창하며 가수의 꿈을 키운 롤모델도 리틀 리처드였다고.....  

 

 

 

1932년 조지아주 메이컨에서 태어난 리틀 리처드는 10대 때부터 약장사 쇼단에서 노래와 피아노 등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리틀 리처드가 가수 데뷔 후 1957년 호주 순회공연 중 하늘을 가로지르는 불덩이를 보고 신의 계시로 받아들여 신학교육을 받고 목사가 됐다는말도 있다. 이 불덩이는 훗날 스푸트니크 1호 인공위성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1962년 가수로 복귀한 리틀 리처드는 성직자 생활과 로큰롤‧가스펠을 오가며 활동해 왔다. 미국 빌보드에 따르면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자신이 양성애자란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리틀 리처드는 강렬한 피아노 연주, 긁는 듯한 그로울링 창법 등 에너지 넘치는 음악으로 기존 음악의 경계를 허물며 로큰롤 태동기 비틀스를 비롯한 후배 뮤지션들에게 에 큰 영향을 끼친 뮤지션이다. 비틀스와 롤링스톤스가 1960년대 리틀 리처드의 영국 투어에 오프닝 밴드로 서고, '기타의 신' 지미 헨드릭스가 리틀 리차드 밴드에서 연주하기도 했다.

 

 

리틀 리처드는 1986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그리고 리틀 리처드는 1993년엔 쳇 앳킨스, 셀로니어스멍크 등과 함께 그래미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다. 2004년과 2011년 롤링스톤 선정 로큰롤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 순위에선 레이 찰스(10위)보다 높은 8위를 차지했다. 리틀 리차드는는 폭발적인 샤우트 창법과 격렬한 피아노 연주로 후대 음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로이터 통신은 리처드의 전성기 기법을 “외치고, 신음하고, 절규하고, 전율했다”고 평가했다. 또 “리처드의 음악이 미국 내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시기 젊은 흑인과 백인 팬을 동시에 끌어들였다”고 했다

 


리틀 리처드는 1950년대 중반부터 '투티 프루티'(Tutti Frutti), '롱 톨 샐리'(Long Tall Sally) 등 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도 초창기인 1986년에 일찌감치 헌액됐고 미국 음악잡지 롤링스톤이 꼽은 '가장 위대한 100대 아티스트' 8위에 선정됐다. 1993년에는 그래미 평생공로상을 받았다고한다.

 

 

 

리틀 리처드는는 음악으로 인종 간의 장벽을 무너뜨리는데도 공헌했다. 공연장 객석이 백인과 유색인종으로 나뉘어 있던 시절, 그의 공연이 끝날 때면 백인과 흑인이 뒤섞여 열광했다. 리틀 리처드는 생전 인터뷰에서 “나는 언제나 로큰롤이 모든 인종을 화합하도록 해준다고 생각해왔다”고 말해왔다고...

 


리틀 리처드의 별세에 롤링 스톤스의 믹 재거, 밥 딜런, 엘튼 존, 비틀스의 링고 스타 등 숱한 전설적 뮤지션들이 고인이 살아 생전에 자신들에게 주었던 음악적 영향을 언급하며 추모했다.

 


믹 재거는 SNS에서 "리틀 리처드는 내 10대 초반에 가장 큰 영감을 줬고, 그의 음악에서는 1950년대 중반 음악계를 처음 강타한 그 때처럼 여전히 날 것의 짜릿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면서 "함께 투어를 돌 때면 매일 밤 그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지켜보고, 관객을 즐겁게 하고 몰입하게 하는 방법을 배우곤 했다"고 고인을 추억하고, 애도했으며,

 



밥 딜런은 "어린 소년 시절 리틀 리처드는 빛나는 별이었고 나를 안내하는 빛이었다"며 "물론 그는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지만, 삶의 한 부분이 사라진 것만 같다"며 슬퍼했으며, 엘튼 존은 "음악적으로, 보컬에서나 시각적으로나 그는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줬다"며 "십대 시절 그의 라이브를 보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흥분되는 사건이었다.라고 고백을 했다고 한다. 리틀 리차드의 음악을 듣는 일은 온몸에 소름과 전율, 기쁨이 느껴지는 일이었다"고 회상했다.비틀스 링고 스타는 '내게 최고의 음악적 영웅 중 하나'라며 "그의 가족들에게 평화와 사랑이 깃들길"이라고 덧붙였다.

 



2016년 별세한 영국 록스타 데이비드 보위는 2003년 한 잡지와 인터뷰에서 9살 때 영화에서 리틀 리처드를 처음 본 일을 회상하며 "그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음악에 뛰어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많은 뮤지션들에게 음악적 영감과 도전을 준 리틀 리차드의 죽음은 미국 음악계의 커다란 별 하나가 진 것이다.

 

  리틀 리처드 / Tutti Frutti 가사

 

A-Wop-bop-a-loo-lop a-lop-bam-boo 
Tutti Frutti, all over rootie,..... 
Tutti Frutti, 이곳 저곳에...(?) 

A-wop-bop-a-loo-lop a-lop bam boo 

I got a gal, named Sue, 
내겐 Sue라는 여자가 있어 

She knows just what to do. ..... 
그녀는 자기가 할 일을 알지 

I've been to the east, I'vebeen to the west, but 
난 동쪽에도, 서쪽에도 가봤지만 

she's the gal That I love the best. 
역시 그녀보다 더 사랑하는 여자는 없어 

Tutti Frutti, all over rootie,..... 
Tutti Frutti, 이곳 저곳에도.. 

A-wop-bop-a-loo-lop a-lop bam boo 

I got a gal, named Daisy, 
내겐 Daisy란 여자가 있어 

She almost drives me crazy ........ 
날 거의 미치게 만들지.. 

She knows how to love me , 
그녀는 날 사랑하는 법을 알아 

Yes indeed 
분명해 

Boy you don't know, 
오 너네들은 모르지 

What she's doing to me 
그녀가 내게 뭘하는지 

Tutti Frutti, all over rootie,..... 
Tutti Frutti, 이곳 저곳에도.. 

A-wop-bop-a-loo-lop a-lop bam boo 

I got a gal, named Daisy... 
내겐 Daisy란 여자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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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게 시작하는 “Tutti Frutti”는 항상 리틀 리처드의 공연 무대에서인기를 한 몸에 받은 곡이었지만,  리처드는 이  Tutti Frutti곡이 음반으로 발매되리라 기대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노골적이고 이유는 성적 수위가 높은 선정적 가사 때문이었다. 팝의 본질을 정의내리는 음반 하나가 1955년 9월 14일 뉴올리언스의 J&M 스튜디오에서, 리처드가 리코딩 세션 막바지에 이르러 “Tutti Frutti”를 마구 두들겨대던 중 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프로듀서 “범프스” 블랙웰은 이 곡 Tutti Frutti,가 .발산하는 흥분과 에너지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작곡가 도로시 라보스트리를 고용해 좀 덜 자극적인 가사를 만들게 했다고 전해 온다.

 


라보스트리는 ‘대청소’를 벌여  Tutti Frutti곡을 다듬었는데, 리틀 리처드의 리코딩은 단정하게 정돈한 팻 분의 “Tutti Frutti”에 맞서 차트 대결을 펼치기에 충분할 만큼 방송되지 못했다. 그러나 더 오래 사랑받은 것은 리처드의 휘황찬란한 버전이었고, 리버풀처럼 멀리 떨어진 곳의 비틀즈도 그의 팬이 되었다. 그것을 넘어 많은 십 대들을 마법에 홀리게 한 것도 바로 리처드의 “Tutti Frutti”였다.

 


가스펠과 점프 블루스에 부기우기 피아노를 혼합시킨 리처드를 팝 역사에 주요 인물로 남을 수 있게 해준 독특한 요소는 바로 그의 강한 개성이었다. 그의 폼파도르 헤어스타일, 화장, 광란의 동작들을 본 50년대 중반 미국 대중은 충격에 휩싸이는 한편 놀라워했다. “Tutti Frutti”로 그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1년 후 영화 〈더 걸 캔트 헬프 잇〉에 출연하면서 리틀 리처드는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리틀 리처드 / Tutti Frutti 듣기

 

 

리틀 리처드 / Tutti Frutti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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