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문혜정 green time

그 나라에서 온 엽서 / 김경미 본문

좋은 시

그 나라에서 온 엽서 / 김경미

선한이웃moonsaem 2020. 12. 13. 15:42

 몇 년만인지요

  이곳엔

  나무와 공원과 연두색 이삼층 목조집들만 가득합니다

  아래층엔 조용하고 깨끗한 헌책방

  다락방 숙소엔 하늘이 보이는 격자천창과

  녹색의 흔들의자가 있습니다

  바로크풍의 책상과 오렌지 갓스탠드도 세 개나 있습니다 

 

  천둥번개 치던 날 당신의 전화벨소리 그치지 않고

  저 아득한 원시로부터 마음 사냥을 나온 공포도

  그치질 않아

  아름다운 방 버려두고 남의 방문 앞 어둠속에서

  한강 근처에서 봤던 당신의 가을,

  그 가을들을 어떻게 다 건넜던가, 꼽아봤습니다 

 

  좋아하지 않던 단맛이 생존에 필요하단 걸 느껴

  비스킷과 맥주를 사왔습니다

  급히 먹고 난 비스킷 겉봉엔 익혀 먹으라고 써있고

  맥주병에는 쓴 약이 몸에 달다 써있었습니다

  한 늙은 백인 아내는 흑인 남편보다 일주일 먼저 떠나면서

  내 남자를 기내용 트렁크에 넣어 데려가고 싶지만

  먼저 가서 기다리겠다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풀밭 토끼가 도망가지 않으므로 사람쪽에서 그만

  도망을 다닙니다

  매일 고양이를 보러 가는 건 유행이어서가 아니라

  왠일인지 당신이 드물게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창틀 화분에 물 주는 일보다

  달력에 물 주는 일이 더 이로울 듯하지만 

 

  어떻게 비사교적인 당신과 겹쳐버렸는지 추억의

  유리창 너머 기웃대려 오늘은 <myself>,

  서울의 식당 물컵 같은 이름의 펍에 갑니다 눈발인지

  세월인지 맞으며 초저녁부터 가렵니다

 

 

 

 

 

'좋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람의 식사법 /이종섶  (0) 2020.12.13
꺾인 덜꿩나무의 생 /공 광복  (0) 2020.12.13
소리 없는 것들의 슬픔 / 김경수  (0) 2020.12.13
달의 문장  (0) 2020.12.13
아득한 것에 대하여  (0) 2020.12.12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