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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혜정 green time
가을 산행길 무릎 정도의 생소한 나무 한 그루 ‘ㄱ’자로 꺾여 있었다 아빠를 따라 나선 개구쟁이가 꺾었을까 장난이, 운명이 되어버린 꼽추는 살아갈 세월만큼이나 두려워 떨고 있었다 어찌 할거나, 어찌 할거나 구부러진 한평생을 어찌 살아낼거나 내 삶만 같아, 내 아픔만 같아 꼽추의 생은 어찌 할거나 기억의 흙벽 위에 아린 만큼의 깊이로 새겨진 채로 아주 작은 시간 하나가 지나가고 다시 찾은 겨울산 등 굽은 기억 하나 가로막고 서서 여기 근처라 한다 여기라, 여기 근처라고? 어디였더라? 아, 저기로구나 이토록 그의 상처가 가벼웠을까 기억에서 한참 떠난 자리에 꼽추는 말을 잃은 채 굽은 등으로 눈을 받아 내고 있었다
몇 년만인지요 이곳엔 나무와 공원과 연두색 이삼층 목조집들만 가득합니다 아래층엔 조용하고 깨끗한 헌책방 다락방 숙소엔 하늘이 보이는 격자천창과 녹색의 흔들의자가 있습니다 바로크풍의 책상과 오렌지 갓스탠드도 세 개나 있습니다 천둥번개 치던 날 당신의 전화벨소리 그치지 않고 저 아득한 원시로부터 마음 사냥을 나온 공포도 그치질 않아 아름다운 방 버려두고 남의 방문 앞 어둠속에서 한강 근처에서 봤던 당신의 가을, 그 가을들을 어떻게 다 건넜던가, 꼽아봤습니다 좋아하지 않던 단맛이 생존에 필요하단 걸 느껴 비스킷과 맥주를 사왔습니다 급히 먹고 난 비스킷 겉봉엔 익혀 먹으라고 써있고 맥주병에는 쓴 약이 몸에 달다 써있었습니다 한 늙은 백인 아내는 흑인 남편보다 일주일 먼저 떠나면서 내 남자를 기내용 트렁크에 넣어..
고양이와 새는 밤 지그시 감는 눈 교감, 고양이를 바라보며 시를 쓰는 밤 안정감, 낮은 담 위 쓸쓸한 고양이 적막감 복숭아나무 바람을 누리며 창틀을 침대 삼아 단꿈을 꾸는 괭이 루기야! 두 귀를 쫑긋쫑긋 미간을 찡긋찡긋 콧수염이 꿈들꿈틈~~ 지금 무슨 꿈을 꾸고 있니? 나른하고 권태로운 일상을 누리는 사랑스러운 네가 때론 부럽다.~~~ ^^ 야~~ 옹 난 책이 좋아요!! 어디서든지 책만 펴면 쪼르르~~ 모든 것들이 움직임을 멈추고 숨을 죽이는 밤의 어둠은 편안하고 안전하지만 고독하다 누가 사람을 고양이의 시종이라고 말했을까 졸린 눈을 껌벅거리며 지금 내 곁을 지키는 고양이는 인정이 다하면 배신하는 인간과 다르다 새벽을 함께 여는 착하고 사랑스러운 고양이 책상 위 아직 주인의 체온이 남아 있는 노트를 이불..
세상을 꼼꼼히 둘러보면 세상 천지에 소리를 내지 못하는 생물들이 널려있다. 소리를 내지 못하는 생물들의 슬픔을 안고 아무리 정밀한 톱니바퀴가 시곗바늘을 돌리고 돌려도 말 못하는 생물들의 슬픔을 다 표현할 수 없고 사람들은 말 못하는 생물들을 밟고 지나간 바람의 얼굴을 기억하려고 한다. 바람이 지나가건 비가 오건 살아있는 생물들의 슬픔은 그렇게 수없이 세포분열하였다. 살아있는 것, 생각하는 것이 슬픔의 근원이었다. 죽음에 이르는 가장 악성 병인病因인 슬픔에 감염되어도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은 매일 슬픔을 대하고 일상에서 슬픔에 대한 예방접종을 받는다. 세월이 무심히 흐를 때 언제나처럼 무심한 일들은 무심한 사건들을 출산出産하고 사람들은 무심하게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고 마감한다. 늙은 존재들을 인생의 종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