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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혜정 green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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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일기

내면 아이

선한이웃moonsaem 2020. 12. 5. 22:25

싸움....

골목길이 시끄럽다. 팔뚝에 문신을  새긴 남자가 아내와 싸우고 있다. 너무 일방적으로 아내를 몰아부친다.안 그래도 연합회 의무 교육에서 아동 폭력에 대한 강의를 듣고 오는 중이었는데.... 무엇이 그를 저토록 화나게 할까? 길가에 서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보니 한 발짝만 물러서면 서로 합의할 수 있는 별 문제도 아니었다. 싸움의 본질이 문제가 아니라, 지쳐 보이는 두 사람의 마음이 아픈 것이 아닌가 싶다. 세상이 편하지 않으니 사람들 역시 마음이 힘든 것일까?. 그러니 작은 것 하나에도 화가 나고 싸움이 되나 보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겁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서로 탓하며 헐뜯고 싸우던 젊은 부부의 대화가 내 귓전을 떠나지 않는다.

 

 

 

"너를 안만났으면 지금 내가 더 행복할 텐데"

사람들은 가끔 이야기한다. "옛날 다시 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럴 수 있다면 아마도 내 인생은 지금과 결과가 다를 거야"라고 혹은 " 그때 내 남편은 그곳에서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을 텐데..라는 미련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 이런 공상이 현실로 이루어진다면 정말 행복한 삶이 보장되는 것일까? 그러나 만약에 현재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면 현실 속에서 만나는 사람이나 환경을 탓하기 전에 성인이 된 자신 속 깊은 곳에서 함께 살고 있는 상처 받은 어린 자아가 있는지 찾아보고  만약에 있다면  그 어린 자아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 행복한 현재의 삶을 살기 위한 더 빠른 길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 내면의 아이 다독이기"

나도 과거에  가끔씩 알 수 없는 우울감이 들 때가 있었다. 그때는 평소와 다르게 마음이 가라앉고 무기력해진다. 그리고 세상에 나 혼자 남은, 아니 우주 한가운데 미아가 되어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처럼 불안해지기도 했다. 시간이 꽤 지난 후에 어느 '심리 워크숍'에 가서 알았다. 내면의 어린 자아가 슬퍼했던 때라는 것을.... 그때부터 나는 어린 내면의 자아에게 편지를 써서 위로 했다. 그리고 나를 외롭게 했던 내 부모님께 그 때 못다 한 말을 편지에 써 내려갔다. 어린 내가 부모님 앞에서 감히 할 수 없었던 말들, 자녀를 향해 결핍된 부모님의 애정 등, 원망과 불평들을 편지지에 가득 채워 써 내려갔다. 그때마다 어린 시절의 슬픔과 외로움이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늘 포커페이스로 살았던 나, 늘 부모님이 부재중인 가정에서 어린 동생들을 챙기며 힘들었던 내면의 어린 나에게 위로와 격려의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어머니 아버지께 편지를 쓰면서 내 안의 상처 받은 아이는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내 속에서 치유받지 못하고 함께 살아오던 내면의 상처 투성이 작은 아이는 자기를 알아 달라고, 자기를 안아 달라고 그렇게 내게 투정을 부렸던 것이다. 그 결과 어떤 것에 집착하게 하거나 과잉방어를 하게 했던 것이다.

 

 

"회복"

우리는 무언가를 정면으로 대하는 일을 두려워할 때가 있다. 그래서 그것을 의도적으로 회피한다. 한 때 나는 어쩔 수 없이 내가 놓아야했던 순수한 동화같은 첫사랑에 대해 미안한 감정과 미련, 죄책감에  때문에 슬퍼하던 시절이 있었다. 헤어짐을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어떤 상황에 의해 결국 그와 이별을 하고, 어쩔수 없는 상황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긴 시간을 지나왔다.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한 미안한 생각은 늘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러나 후에 내면의 상처 받은 아이를 발견하고 그 실연의 원인 조차 내 안의 상처 받은 어린 자아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급했던 결혼도 불안전한 현실을 빨리 해결 하려고 했던 내면의 아이의 선택 때문이었던 것이다. 신중하지 못했던 결혼의 과정이 어렵기는 했지만 그래도 무난한 결혼 생활이라 자위하며 살아갈수 있음도 내 안의 상처 받은 아이를 만나고 그 아이를 위로 하는 과정의 소득이었으리라.

 

 

이제는 더이상 지난 실연의 감정에 연연해하지도, 미안해 하지도 않는다. 그를 생각할 때면 내 마음 한 구석이 아파오지만 지금 생을 더 잘 사는 것이 떠나온 사람에게도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도 내가 해야 할 최선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는 가끔씩 내 안의 어린 나와 대화를 한다. 어머니 아버지 사이에서 어린 동생들을 바라보며 늘 무거운 마음으로 살아온 내 안의 어린 상처받은 나를 위로한다. "00아 ! 너 힘들었지 ? 그래도 반듯하게 정말 잘 살아왔구나"하고 어린 시절 내 부모님께 받아보지 못했던 격려와 지지의 말과 사랑한다는 말을 수시로 내 안의 상처받은 어린 나에게 속삭여 준다. 그럴 때면 내 어린 자아는 더 힘을 내기 시작한다. 그러면 상처 받아 지치고 우울한 내면의 아이가 아닌 활짝 웃고 힘이 넘치는 새로운 내면의 아이를 보게 된다.

 

 

이유없이 우울하고 사는 것이 힘들고 행복이 없다고 스스로가 느껴진다면 자신의 마음 소을 깊이 들여다 보라. 언젠가 상처를 크게 받은 당신의 어린 자아가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혹시라도 그 아이를 만나게 된다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말로 위로 하고 감싸주길 바란다. 그 상처 받은 어린 자아가 회복 되는 날 당신의 삶도 깃털처럼 가벼워질 수 있을테니까...

 

 

 

나는 텔레비전을 집에 두지 않는다. 하루 종일 앵앵거리는 소리가 시끄럽기도 하지만, 사람들 삶에 희망을 주는 프로그램보다 단지 먹고, 놀고 , 다투는, 거기에 삼류 막장 드라마 가지 합세해서 인간의 영혼을 피폐하게 만드는 물건을 집안에 모셔둘 가치를 못 느낀다. 그뿐 아니다. 멀쩡한 판단력을 비정상적으로 바꿔버리는 기레기들의 집합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텔레비전이 바보상자라는 별명이 붙은 것이 아닐까?. 그러나 가끔씩 유튜브를 통해서 '긴급 출동 SOS'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파뿌리'등을 본다. 그곳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 아픈 사람들 속에 바로 '상처 받은 내면의 아이들이 숨어 있었다. 외롭고 마음 아픈 성장기를 보낸 나에게 그들의 이야기는 꼭 남의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다. 나의 성장 이야기이기도 하고 내 친구의 이야기이기도 한다. 가난한 시절 우리의 동화 같은 어린날 속에 가시돌기처럼 숨어 있던 아픔들이 있던 때이기도 하니까...

 

 

 

첫 아이를 출산하고 읽었던 책 '딥스'가 떠오른다. "나는 딥스예요. 나는 나를 사랑해요." 부모의 섣부른 기대에 가로막혀 움츠러들기만 했던 딥스가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환하게 웃기까지, 딥스가 건강한 자아를 찾기까지 곁에서 기다려주었던 좋은 선생님이 있었다. 우리는 성장기에 그런 선생님은 만난 지 못했지만 지금이라도  스스로가 내면의 상처 받은 어린 자아를 발견하고 위로해주어야 한다. 내가 일 하고 있는 현장에도 많은 딥스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아파하고 있다. 그 딥스들에게 위로와 힘을 줄 수 있는 건강한 선생이 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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