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문혜정 green time

중언부언.... 본문

a nostalgic diary/끼적끼적....

중언부언....

선한이웃moonsaem 2022. 2. 5. 03:24
어제의 새벽과 오늘의 새벽은 동일하게 시작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새벽은 누구에게나 옵니다. 왜 새벽이라  부르는지 새벽 하늘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푸르스름한 새벽은 어두운 밤과 아침의 경계입니다. 새벽이 거르지 않고 온다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의미있는 일입니다.,하나님께서 창조의 스케쥴 속에 새벽을 넣으신  이유는 인생의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말라는 메세지를 주시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리고 저마다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으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생의  밤에서 아침으로 나가는  진정한 새벽은 예수그리스도를 만날 때 옵니다. 
 
우리 인생은  자연 속에서 어떠한 원칙을 발견하고, 그 흐름을 기준으로 시간을 나누고 계절을 구분합니다. 고대인들이 일식이나 월식 때 놀라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당연하다 여겼던 법칙을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우주라는 큰 흐름의 시각 속에서 태양, 지구, 달을 반영한 달력이나 예보를 접하기에 해의 전부나 일부가 사라진다 할지라도 갑자기 달이 사라진다 할지라도 당황하거나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온 우주를 만드시고 거기에 질서를 넣으신 분, 우주를 운전 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연의 일정한 법칙에 적응해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자연의 순리에 순응해 살아간다고 문제없이 만족할 만한 인생의 열매가 맺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자녀로 선택 받은 우리에게는 미션이 있습니다. 복음을 알리는 것입니다.그 결과가 하나님 자녀의 인생 열매입니다. 복음은 은혜입니다. 복음이 은혜인 이유는 내 세계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하나님 말씀 안에서,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일어나는 구원의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 한 가운데에 복음을 위해 하나님이 쓰신 사람이 있습니다.  모든 삶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오직 성령인도 받기를 원하며  그리스도의 계절속에 살아가던 사람이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말하는 그리스도의 세계와  그리스도의 방식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오직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간절 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하나님께서  외면하셨고, 성전의 휘장이 갈리던  오후3시,  사람들의 이유없는 분노와 조롱을 온 몸을 받아내셨고 째찍을 맞으시고  온 몸의 물과 피를 쏟고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그리스도께서는 ,  "다 이루었다." 말씀하시고 승천 하셨습니다. 죄인을 건지시기 위한 방법은 오직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죄값을 감당 하시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최선의 자세는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그리스도 처럼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사람에 따라 다를것입니다. 그러나 등에 져야할 십자가는 누구나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방법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방식을 삶의 원칙으로 삼는다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관계를 이해하고 자신도 복음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닮아 가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겠다는 고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지신 고통의 십자가를   자신도 마다하지 않고 따르는 방식이었습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말하는 전도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복음은 본디 그렇게 전해지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바울입니다. 부활을 믿지 않고는 결코 살아낼 수 없는 현실. 절대로 흉내 낼 수 없는 삶.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십자가를 통한 영광의 삶, 이를 ‘비밀’이라 부릅니다. 
 
복음을 깨닳았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역설 안에서 이해되는 것, 내 삶이 그리스도라는 공식을 따르는 것이었다는 것을  깨닳습니다.사도 바울은 오해 받고 고난 당하다 감옥에 갇혀 죽음을 기다려야 했던, 풀리지 않던 인생  질문에 대한 답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찾은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에게 올 수 있는 어두운 밤과 같은 시간도, 추적추적 내리며 몸을 으슬으슬 떨게 하는 비가 오는 것 같은 시간도, 웅크릴 수밖에 없던 추위를 느껴야 하는 삶이 와도, 우리 생각으로 이해될 수도 설명될 수도 없는 시간 속에서 예수그리스도 십자를 생각하고 그 방법에 순종하면 승리의 결과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도 은혜의 복음을 통해 그리스도 팔 안에 거할 때  깨닳았습니다. 로마시민권을 갖고 권력과 명예를 누리고 있던 사도 바울은 자신을 통해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복음이 흘러 보낼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을 바울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다멕섹 상에서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더면 자신이 이방인의 전도자가 될것에 대해 절대 인정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모든 이방인을 향한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전도자의 길을 갑니다 
 
 

하나님 자녀인 우리는 하나님 앞에 상속자입니다. 하나님 낲에 공동 상속자란 미래에 함께 약속을 받게 될 것을 의미하고, 공동 참여자들은 약속을 이미 함께 받았던 자들임을 뜻한다면, 공동의 지체들은 바로 지금 우리가 함께하는 성도들이 귀한 동역자로서 서로 섬기며 동역 하는 모습이어야 한다는 권면입니다. 그리스도의 손 안에 들어와 안긴다는 것은 마음 내킬 때 왔다가 마음이 바뀌면 뿌리치고 도망 가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그리스도께 속한, 교회 공동체를 하난님이 부르실 날 까지 말씀 안에서 교회에 대해 동역허며 순종하며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방식대로 교회를 세우는 직무를 감당합니다. 은혜의 경륜이라는 표현 중 경륜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오이코노미아’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향해 사용되었을 때는 하나님이 우리 구원을 위해 일하시는 신비로운 역사를 표현하지만, 사람에게 사용되었을 때는 직무나 사명으로 번역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신비로운, 역설적인 역사하심을 체험했기 때문에, 자신이 감옥에 갇혀있는 상황도 두렵지 않고 자신의 사역과 그 결과의 모순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겼습니다. 모순을 당연히 여기는 역설자로 살아간 것이고, 에베소서 교회도 이를 낙심하지 말고 영광으로 여겨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에게도 이해되지 않는 현실이 있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긴 기다림이 숨 막히게 할 수도 있습니다. 여름밤을 지내는 것보다 겨울밤이 더 길고 어둡습니다. 연중 반을 지내는 캄보디아의 우기 아래에선 서울보다 더 많은 비를 맞을 것입니다. 내 집 앞에 아무리 많은 눈이 내린다 해도, 얼음으로 뒤덮인 북극만 하겠습니까. 인생에도 아무리 얼음을 깨고 몸을 말리며 불을 피운다고 해결되지 않는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절망합니다. 아파합니다. 쓰러집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침을, 태양을, 온기를 기대하는 것이 지금 하루를 말씀과 기도로 시작하려는 우리네 마음이지 않을까요? 어둠이 아무리 깊어도 아침이 오듯이 누구에게나 빛은 올 것입니다. 빛이 오면 지금까지의 삶은 송두리째 바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가장 작은 것보다도 더 작은 자로 여기지만, 그리스도는 측량할 수 없을 풍성함이라 합니다.그리고  자신에게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그리스도의 능력이 역사한 대로 은혜의 선물을 따라 일했다 합니다.  자신을 지우신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함으로, 부활의 풍성함을 누리며 살고 싶습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넘치는 것이 당연하고 넘쳐흘러도 괜찮다 하시는 절대적 풍성함 속에 들어가길 소원합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풍성함은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시간을 통해서만 누릴 수 있다는 바울의 고백을 잊지 않고자 합니다. 지금은 영적 전쟁터입니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서는 내가 죽어야합니다. 가장 잘 죽는 방법은 말씀 속에 있습니다. 나를 죽이면 다른 사람이 삽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넘겨 주신 십자가가는  골고다 언덕 위로 숨가쁘게 질질 끌고 가는 고통의 십자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역사가 일어나는 승리의 십자가로 끝나야 합니다. 지금, 오늘,이 시간부터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영원히.... 
 
 
https://youtu.be/OZDi66kFfyo
 

'a nostalgic diary > 끼적끼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0) 2022.02.05
고독 하기  (0) 2022.02.02
잘 늙어가기  (0) 2022.02.02
비움의 역설...  (2) 2022.02.02
성도의 삶  (0) 2022.02.02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