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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혜정 green time
아버지와 소나무 본문
아버지가 남기신 오래된 책상 서랍을 열고 정리를 시작합니다. 소나무 분재를 들고 계신 아버지 사진 한 장이 눈에 띄네요. 생전에 상록수를 좋아하셨던 아버지는 분재 만들기가 취미셨지요. 상록수 중에서도 유독 소나무를 좋아하셔서 소나무 분재를 주로 만드셨기 때문인지 당신이 가장 아끼는 소나무 분재와 함께 자주 사진을 찍으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생전에 우리 아버지는 성품이 소나무처럼 꼿꼿하고 잘 휘지 않는 그리고 무뚝뚝해 보이는 분이셨지요. 그러나 실제 아버지는 마음 깊은 곳에는 따뜻하고 자상함을 숨겨 두신 단정한마음을 가지셨던 분이셨습니다.
산에 올라가서 소나무 껍질을 만져보신 적이 있나요? 소나무 껍질은 거칠고 투박해 보이지만 은은한 향과 촉촉한 속살을 숨기고 있답니다. 실제로 껍질이 거친 소나무를 가만히 안아 보면 그렇게 친근하고 편안할 수가 없거든요. 심지어는 안고 있는 소나무가 포근한 느낌마저 든답니다. 그리고 투박한 껍질에 얼굴을 대고 있으면 그 껍질 속에서 배어 나오는 은은한 소나무의 향은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켜주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거칠고 투박한 껍질 속에 숨겨져 있는 보드랍고 촉촉한 나무의 하얀 속살을 만져보면 한없이 부드럽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그러셨습니다. 운동으로 다져진 호리호리한 체격에 부리부리한 눈매, 그리고 인중이 뚜렷한 입술을 꽉 다물고 계신 모습은 무뚝뚝하고 무정한 사람처럼 보여서 사람들이 먼저 다가서기 쉬운 인상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단 한 번이라도 만나보면 아버지의 속마음은 우유로 만든 쉬폰케익처럼 부드러운 분이라는 것을 누구나 금방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차분한 말투 사이에 간간이 흘러나오는 해학적인 유머는 듣는 이의 긴장을 금방 풀리게 합니다. 그런데 마음이 여린 아버지는 별로 슬프지 않은 드라마를 보면서도 혼자 몰래 눈물을 훔치시고는 하셨지요. 이것은 사람들이 모르고 나만 아는 아버지의 반전 모습입니다.
소나무와 아버지가 닮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어린 시절 외갓집 근처 야산에서 만난 황 솔에 대한 추억 때문입니다. 외갓집으로 들어가는 동구 밖 길을 따라가다 보면 길 옆 나지막한 야산에 껍질이 노란빛을 띠는 황솔 나무들이 즐비하게 서 있었습니다. 바람이라도 솔솔 부는 날이면 바람 따라 흘러나오는 초여름 싱그러운 풀 냄새와 그 소나무들에게서 은근히 베어 나오는 솔향기가 정말 좋았습니다. 나는 소나무 아래에 있는 낮은 바위에 누워서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을 한참 올려다보곤 했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부모님이 생각나서 나지막이 부모님을 불러보곤 했었지요. 소나무를 만지던 그 바람이 내 목소리를 멀리 계신부모님께 전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랬었나봅니다. 아버지는 그때 내가 맡았던 은은한 솔향기처럼 좋은 사람의 냄새가 몸과 마음에 늘 배어있었습니다. 그리고 송진, 송화 가루, 목재를 제공 하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몸을 활활 불태우는 땔감으로 사람들에게 보시하듯 모든 것을 내주는 소나무처럼 아버지도 평소에 자기 자신보다 남을 우선 챙기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가 소나무를 닮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버지 주변에는 가난하거나 아프거나 이런저런 문제로 힘든 인생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아마도 당신의 배고프고 서럽던 시절에 대한 쓸쓸한 기억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는 당신의 마음과 시간, 그리고 돈을 누군가에게 늘 나누어 주고 사는 일을 사명처럼 여기신 것 같았거든요. 어느 때는 가난한 노인에게 월급봉투를 털어서 빚을 갚아 주고 헐렁하고 얄은 월급봉투를 어머니께 주는 모습을 본적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매번 그런 월급봉투로 5형제들을 먹이고 학비를 내야하는 각박한 한 달을 살아 내실 것을 생각하시며 한숨을 쉬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아버지는 농번기에는 일손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휴일을 반납하고 그곳에 가서 농사일을 거들었습니다. 또 인생살이가 고단해서 마음이 지친 힘든 사람들에게 막걸리 한 잔을 대접합니다, 그리고 새벽까지 묵묵히 그들의 어려운 사정을 들어주고 힘을 내라며 응원을 하셨습니다. 이런 모습이 아버지의 일상적인 모습이셨습니다. 술자리가 끝날 때면 환하게 웃으시며 상대방에게 주머니를 털어 주시던 살아생전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혹시 소나무의 향기를 맡아 보신 적 있으신가요? 소나무의 고급스런 향기는 아버지의 온유하고 깊은 마음을 닮았습니다. 어릴 때 우리 집에는 연좌제가 있었습니다. 동생들이 잘못하면 언니가 동생을 잘 이끌어주지 못 했다는 이유로 언니인 나도 함께 벌을 받게 됩니다. 그날도 매일 노는 일에 빠져 시험공부를 하지 않은 셋째 동생이 형편없는 성적표를 받아 왔습니다. 내가 봐도 기가 차는 점수들이 힘없이 늘어져 있는 성적표였거든요. 그런 동생을 방치 한 것은 언니가 해야 할 일에 대한 직무유기죄라는 이유로 나는 아버지께 종아리를 맞았습니다. 작은 회초리로 맞은 종아리가 따끔거리기도 했지만 동생 때문에 매를 맞았다는 사실이 억울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말없이 나를 바라보셨습니다. 동굴처럼 깊은 곳에서 애정이 뿜어 나오는 것 같은 그 형용하기 어려운 아버지의 눈빛은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자애로 왔습니다. 지금도 그 때 아버지의 눈빛이 기억 속에 생생합니다. 그때 나는 우리 집의 연좌제가 자녀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의 증표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바람이라도 부는 날이면 맡을 수 있는 ‘테르펜’이라는 은은한 소나무의 향기가 세상살이에 지친 사람의 심신을 안정시키듯이 우리 아버지가 그랬습니다.
나는 소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여름 날 소나무가 바람 따라 들려주는 소리는 다른 활엽수들이 들려주는 산만한 바람 소리와 다르더군요. 바람이 부는 날 소나무 소리를 들으려면 우선 고요한 마음이 돼야 소나무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답니다. 우리 아버지도 그러셨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겉모습이 서운해 보이거나 야속할 때면 아버지의 진심을 마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사람들과 나누는 이야기 소재는 농담이나 가볍게 웃고 지나갈 일상의 이야기들이 아니었습니다. 자식들에게도 같았습니다. 어느 가을날 만연산 아래 있는 저수지 둑 위에 앉아서 아버지가 낙엽을 보시면서 나에게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신 때가 생각이 납니다. 나이가 어렸던 나는 아버지께서 해주신 말씀의 깊이를 다 헤아리지는 못했지만 그 때 아버지의 나이를 훌쩍 넘어선 지금에야 그때 아버지의 심정 그리고 그 말씀의 뜻을 알아차렸습니다. 아버지가 내게 말씀을 하실 때마다 아버지의 말투는 늘 차분하고 담담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대해서 혼자 차분히 생각을 해야 내게 해주신 그 말씀의 의미를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이 찡해옵니다. 아버지가 7살 때 내 조부가 돌아가시고 12살에 아버지를 데리고 재가 하신 조모마저 14살에 돌아 가셨다고 합니다. 새 가정에 덩그러니 홀로 남겨진 아버지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신문 배달과 쌀 배달을 하면서 공부를 하는 고학생이 되셨지요. 일을 마치고 허기진 배를 움켜지고 집으로 돌아오면 식탁은 늘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고 늦은 밤에 공부를 해야 하는 아버지에게는 기름이 닳으니 호롱불을 끄라는 매서운 의붓어머니의 빗자루 매질이 일상이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들을 때 마다 나는 아버지가 미처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더 많은 서러운 말들을 이미 마음으로 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불쌍해서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그때 아버지께서는 내 눈물을 닦아주시면서 “ 사람은 늘 내입장만 생각하면 안 된단다. 자기가 낳은 자식도 아니고 어느 날 갑자기 들어온 다른 사람을 가족이라 여기고 살아가는 그분들은 얼마나 힘들었겠니?” 라며 내 등을 다독거리셨지요. 약주 한 잔 하시고 얼큰해지신 아버지는 배다른 형제들과 차별 하셨던 그 분들을 탓하거나 미워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단지 술상 앞에만 앉으면 가끔 마음도 배도 허기졌던 어린 시절이 문득문득 생각이 나시나봅니다.
우리 아버지도 많이 외로우셨던 가봅니다. 당신에게 주어진 삶에 대해 운명이라 여기며 항상 웃으시며 사셨던 아버지께서 간혹 술이 얼큰하게 오르시면 큰 딸 앞에서‘ 혜정아! 인생이 참 고독하구나!’ 라며 혼잣말로 말씀을 하시곤 하셨습니다.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평생 홀로 인생을 개척해야 했던 아버지의 고독은 타인과 함께 나누었던 삶으로도 해결이 안 되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런 삶의 방식조차도 당신의 고독한 인생을 극복해가려고 선택한 삶의 방식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좀 더 일찍 그 고독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철 든 자식이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나서야 뒤늦게 철이 드는 것이 자식인가 봅니다. 내 곁을 떠나실 때까지도 아버지의 진짜 아픔을 헤아리지 못하고 ‘아버지의 고독은 아버지의 몫’으로 치부해버린 어리석고 못된 큰 딸이 오늘은 소나무처럼 살다 가신 우리 아버지가 유난히 그립습니다.
지금 내 손에 들린 아버지의 사진이 세월 따라 나이를 먹어 가는지 세월 따라 노랗게 퇴색돼가고 있습니다, 이제 아버지는 우리 곁을 떠나셨고 그리워도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내 마음속에는 아버지가 모델이 된 수많은 그림들이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 그림들은 푸른 소나무처럼 색이 바라지 않고 나만의 명화로 내 마음 속 창고에 저장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림을 한 장 한 장 들춰보면 나도 타인들에 대해 더 관심을 갖고 그들에게 이로운 이웃으로 살아가려는 마음을 줍니다. 오늘은 아버지의 큰 딸이 인생의 멘토 아버지께 생전에 부끄러워서 못해드린 말 “ 아버지, 사랑 합니다”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a nostalgic diary > 끼적끼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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