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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혜정 green time
어머니와 남도 여행 본문
몸이 아픈 어머니를 위해 어린 나는 외갓집에 마겨지게 되었다. 나는 마법에 홀린 듯, 분홍빛 봄날에 알근히 취했었다. 동구밖에 있는 커다란 벛꽃나무 터널은 몽환적인이었다. 바람이 불때마다 하얀 꽃눈이 내리던 그곳은 엄마와 떨어져 있는 어린 내 마음이 슬프다는 것도 잠시 잊게 해주었다.
벛꽃 터널 안에서 혼자 꽃놀이를 하던 소녀는 이제 할머니가 되어 어린 손녀와 나란히 서서 꽃을 본다. 사르륵 부는 봄바람이 연분홍 꽃잎과 함께 아이 곁을 빙그르르 돈다. 아이는 이 꽃에서 저 꽃으로 흐르고 있는 나비를 잡으려고 깡총거린다. 천진한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돌아 올 수 없는 곳으로 멀리 떠나가신 어머니 생각이 간절하다.
꽃이 좋아서 봄이 되면 꽃밭에서 사시던 어머니는 조락한 꽃 따라 개나리 봇짐 하나 없이 먼 길을 떠나셨다. 겨울 산은 봄을 맞아 다시 젊어지고, 그 꽃들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데 우리 어머니만 여태 소식이 없다.나는 노란 개나리와 벛꽃이 지고 보리밭이 파래질 때 쯤이면 나는 어머니와 둘이서 장흥, 해남, 완도를 지나는 남도 여행을 하곤 했었다. 그날 여행은 어머니 살아생전 마지막 여행 이었다. 어머니와 나는 어린 아이처럼 마음이 설렜다. 여행 중에 어머니는 설피 꽃밭이 있는 토담길을 만나면 친정 골목길을 닮았다며 유난히 좋아하셨다.어머니와 함께 보았던 참오동 나무 하얀색 꽃과, 장독대 주변을 들쑥날쑥 제멋대로 피어 있었는 접시꽃들이 어우러진 풍경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꽃구경을 하시던 어머니는 당신과 목단꽃 사이에 얽힌 에피소드를 들려주셨고 우리는 한참을 웃었다.
어머니는 자서전이라도 쓰시듯이 당신의 지난 시간에 대해서 처음으로 내게 작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씀해 주셨다. 아버지와 결혼 후 시작된 어머니의 그늘진 인생에 대해서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젊은 시절 하숙집 주인 딸과 눈이 맞아 사랑에 빠진 아버지가 집안 어른의 반대에 부딪혀 첫사랑을 두고 억지로 어머니와 결혼을 하게 됬던 일이며, 그 후 실연을 가슴 아파하다가 슬픔에 겨워 먼저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연인 이야기며, 어머니가 아버지의 이유 없는 냉대를 오랜 시간 홀로 묵묵히 견뎌 온 시간에 대해 담담히 말씀해 주셨다.
어머니는 "부모 복이 없으면 원래 남편 복도 없는 것인디, 내가 겪은 외로움을 새끼들에게 똑같이 물려주지 않았어야 하는디,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때는 내가 마음에 힘이 없었드라."라며 눈물을 훔치셨다. 그동안 어머니의 한쪽 모습만 보고, 어머니의 마음 깊은 곳의 상처를 알지 못하고 투덜거리던 나의 둔감함이 죄스럽고 부끄러웠다. 어머니와 손잡고 여행 하는 동안에 어머니를 향해 내 속 귀퉁이에 숨어 있던 응어리진 마음 하나가 봄눈 녹듯이 녹아 내렸다.
어머니에게도 소녀 시절이 있었고 사랑하는 이를 생각하면 가슴 뛰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그날 알게 되었다. 어머니도 남편에게 사랑 받고 살아야 행복한 여자였다는 것을 나는 그동안 왜 생각하지 못하고 살았을까? 후회스러웠다.
여행 중에 본 어머니는 평소처럼 수심에 가득하거나 수척해 보이지 않으셨다. 스무 살 갓 넘은 처녀처럼 마음은 들떠 보이고 얼굴에는 생기가 넘쳐흘렀다. 내가 본 어머니의 모습 중에 가장 근심이 없고 행복한 모습이셨다.
돌아오는 길에 함평 나비 축제에 들렸다. 하우스마다 이색적인 꽃과 나비들이 가득하였다. 바람도 없는 더운 비닐하우스 안에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급조해 놓은 관상용 꽃들과 나비들을 보시던 어머니께서는 말씀 하셨다. “지금 밖에는 지천으로 깔린 것이 꽃인디 나비들이 참 불쌍하구나 나 같으면 천금을 주어도 답답해서 못살 것 같은디 나비들은 이 하우스 안에서 얼마나 숨이 막힐까나.” 하시며 금새 밖으로 나가자고 하셨다.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세팅해 놓은 하우스 안에 갇혀 있는 나비들의 처지가 남 같지 않았던 것이었을까? 어머니는, '세상사는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고 혼잣말을 하셨다. 보이는 대로 판단하는 것들 속에 오류가 많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노래를 처음 들었다. “하얀 찔래꽃 피는 언덕”으로 시작한 노래였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은 어머니의 노래는 선물이었다. 그 노래를 마지막으로 예고도 없이 어머니는 이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니는 안계시지만 ‘과거는 단절 되는 것이 아니라며 외롭거나 아팠거나 고되었던 과거의 축적 속에서 보다 나은 내일이 있을 것’이라는 어머니의 말씀이 잊혀지지 않는다. 끝없이 순환되는 인생의 쳇바퀴를 따라 오다 보니 어느새 어머니가 떠난 자리에 내가 서있다. 어머니의 자리에 서서 보니 이제야 어머니가 제대로 보인다.
차갑고 하얀 여백의 겨울이 지나고 여백이 생명력으로 채워져 가는 봄이 다시 왔다. 개천가에 죽은 듯 사열해 있던 나무들도 산발하듯 봄을 풀어내고 있고, 하얀 꽃송이들도 푸른 허공을 꽉 채워 보려는 듯 다시 거품을 내며 뽀글뽀글 부풀어 오른다. 그 때 어머니의 나이가 된 내 앞에 사랑스럽고 작은 아이가 서 있다. 코끝이 찡하다. 이제 나도 어머니가 먼저 가신 그 길을 잘 떠날 채비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