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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눈 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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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좋은 수필 (19)
문혜정 green time
구두를 샀다. 빨간 단화다. 강렬한 원색이 낮은 굽을 보완해 주어서인지 처음 신은 단화가 어색하지 않다. 한두 해 전까지만 해도 나는 줄기차게 7센티 굽을 고수했다. 무릎이 아프다고, 발목이 좋지 않다고, 진즉 편한 신발로 갈아탄 친구도 있었지만 나는 한사코 하이힐을 고집했다. 젊은 시절부터 습관화되어선지 신발이 낮으면 오히려 불편했다. 굽 낮은 신발을 신고 나갔다가 땅으로 푹 꺼지는 느낌 때문에 기분이 나빠져 들어와 버린 적도 있다. 구두 굽이 높아지면 숨 쉬는 공기의 맛이 다르다. 턱을 치켜들고 등뼈를 곧추세워 또각또각 걷다 보면 마음 복판에도 철심이 박혀 자세가 한결 당당해진다. 종아리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지고 아랫배에 힘이 쏠려 저물어 가는 여자의 곤고한 심신이 일시 탄성을 되찾기도 한다. 쭉쭉빵..
길은 애초 바다에서 태어났다. 뭇 생명의 발원지가 바다이듯, 길도 오래 전 바다에서 올라왔다. 믿기지 않는가. 지금 당장 그대가 서 있는 길을 따라 끝까지 가 보라. 한 끝이 바다에 닿아있을 것이다. 바다는 미분화된 원형질, 신화가 꿈틀대는 생명의 카오스다. 그 꿈틀거림 속에 길이 되지 못한 뱀들이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처럼 왁자하게 우글대고 있다. 바다가 쉬지 않고 요동치는 것은 바람에 실려 오는 향기로운 흙내에 투명한 실뱀 같은 길의 유충들이 발버둥을 치고 있어서이다. 수천 겹 물의 허물을 벗고 뭍으로 기어오르고 싶어 근질거리는 살갗을 비비적거리고 있어서이다. 운이 좋으면 지금도 동해나 서해 어디쯤에서 길들이 부화하는 현장을 목도할 수 있다. 물과 흙, 소금으로 반죽된 거무죽죽한 개펄 어디, 눈부신 ..
너무 깊은 슬픔은 눈물이 되지 못한다. 말을 입어 시가 되지도, 소리를 입어 노래가 되지도 못한다. 몸 속 어디, 뼛속이거나 자궁이거나 췌장 담낭 깊은 속에 날 선 유리로, 깨진 사금파리로 박혀 영혼의 압통점을 무자비하게 가격한다. 사람의 내면에 슬픔의 안개가 가득하면 눈빛으로 온 몸으로 슬픔의 아우라가 뿜어져 나온다. 슬픔에도 반감기가 있어 봄 햇살에 천천히 바래지거나, 가을 빗소리에 녹아나오거나, 깊은 밤 뒤척이는 베갯머리에 어둠침침한 꿈으로 묻어나기도 하지만, 끝끝내 증발하지 못한 슬픔의 흰 뼈들은 육신과 함께 순장되어 흙속에 파묻힌다. 살아있는 것들의 모든 소리를 한꺼번에 삼켜버리는 흙, 세상에 흙처럼 무정한 것은 없다. 흙에 덮이면 모든 것이 무효다. 순간의 기억도, 투쟁의 역사도 속절없이 무화..
지상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동물은? 치타다. 순간 최고 속력이 시속 120킬로미터 정도로 100미터를 3초에 완주하는 속도다. 톰슨가젤이나 타조는 시속 80킬로미터, 지구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사나이 우사인 볼트는 시속 37킬로미터 정도다. 치타가 먹잇감을 사냥하기 위해 달렸다면 인간은 도망치기 위해 달렸을 것이다. 붙잡히지 않으려고, 사나운 짐승들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있는 힘을 다해 달렸을 것이다. 배고파 훔친 겉보리 한 되, 고구마 몇 알을 앗기지 않기 위해, 곤장을 맞고 무리에서 내쫓기는 치욕을 면하기 위해서도 목숨 걸고 달리고 달려야 했을 것이다. 싸울까 튈까 죽은 척 할까를 매순간 결정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 속도의 뿌리는 애초 그렇게 두려움에 잇닿아 있었을 것이다. 생존의 필수조건..